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이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가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p. 23).
모세는 하나님 외에 숭배 받는 물적 대상을 우상으로 정의했다(출 20:3-5). 바울은 탐심을 우상으로 보았다(골 3:5). 바울이 말하는 대로라면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우상들을 품고 사는 셈이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은 우리의 마음에 은밀하게 파고든 우상들을 예리한 말씀의 칼날로 난도질 해 내는 책이다. 다음 6가지 - 평생 소원, 사랑, 돈, 성취, 권력, 문화, 종교- 가 바로 그것인데 본고에서는 세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1. 평생 소원: 오래 간절히 바라온 것일수록 우상이 되기 쉽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벌하시는 최악의 경우는 ‘마음의 정욕대로 버려 두시는 것이다’(롬 1:24). 아니 어떻게 절실한 꿈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 형벌일 수 있단 말인가? 그 갈망이 우상이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p. 36).
아브라함을 우리는 잘 알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마침내 원하던 아들을 백 세에 얻었다. 괴롭고 힘든 무려25년이나 걸렸다.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마음에 차지했을 비중은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아들이 한 지게의 장작 더미를 질 수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했다(창 22:20). 이삭은 이미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반드시 화를 자초하게 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처사는 아브라함에게 자비였다. 이삭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이 첫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축복이 될 수 없다. 만약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아들을 향한 사랑이 우상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아브라함은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p. 49).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제거하기를 원하신다. 그 과정은 때로 우리를 죽이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또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광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사해야 한다. 우상이 제거 되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성경에는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 같은 인물들의 고난의 이야기가 수두록하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그들 마음에 우상들을 다루시는 이야기이다(p. 58).
2. 돈: 풍부한 소유가 영혼의 빈곤까지 채울 수 없다.
물질 앞에서 양심이나 도덕, 자신이 옳다 하는 소신을 끝까지 지켜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개오를 잘 알 것이다. 로마 제국은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세금을 식민지에 부과했는데 그 일의 부역자들이 세리들이다. 그들은 로마의 군사력을 등에 엎고 과도한 세액을 징수했다. 로마 제국에서 설정한 세액 외에 그가 얼마를 거두건 상관 없이 남은 것은 자기 몫이었다. 세리들은 로마 제국보다 두려웠다. 그들은 강도요 동족의 배신자였다. 삭개오는 그런 무리들의 두목이니 최악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왜 물질 앞에 사람은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타락은 신처럼 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지만 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준다. 돈은 내 손 아귀에 들어온 신이다. 성경은 물질을 맘몬, 신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돈을 빌려서 신처럼 착각하게 된다. 삭개오는 그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얻었고 바랬던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 하지만 그 나라 안에 들어와 사는 백성이 없었기에 늘 외롭고 공허했다.
언제부턴가 삭개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다는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 듣곤 했다. 그분은 어떤 죄인도 멀리하지 않는다 했고 죄를 사하며 병든 자를 고쳐 준다고 했다. 어쩌면 자기 같은 사람도 받아주실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예수가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을 뵙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었다. 키가 너무 작았던 탓이다. 아니 어쩌면 어느 누구도 원수 같은 그를 위해 좁은 창조차 내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번만이라도 그 분을 뵈올 수 있다면 … 삭개오는 앞으로 달려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고대 유대 문화는 명예와 품위를 중시했다. 급해도 달려가는 것은 근엄함을 잃는 행위였고 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조롱거리였다(p. 109). 가까워 지는 예수님이 보였다. 드디어 나무 아래까지 오셨다. 그 순간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올려다 보셨다. 숨이 멎는 듯 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와라. 오늘 밤엔 너의 집에서 지내야 되겠다.”
생면부지의 자신의 이름을 어찌 안단 말인가! 신적 존재, 메시아란 뜻이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친구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부정한 재물을 사회에 환원시키겠다고 공언을 했다.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자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과도한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시면 모든 것은 보장된 것이다.
3. 권력: 권력 의지는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다.
“민족애가 절대화되면 인종적 우월감으로 변한다. 평등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의 자리를 점하면 특권적 삶을 영위해 온 이들을 향한 무차별적 증오와 폭력을 낳을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좋은 정치적 대의를 가짜 신으로 둔갑시키는 고질적 성향이 있다”(p. 135).
“유독 성경만은 창조세계의 일부를 악당이나 구주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p. 162).
타락은 인간이 신적 존재가 되어 자신의 운명에 대한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에서 비롯된 불안을 하나님을 의존하여 해결하려 하지 않고 권력 의지를 통해서 하려하기에 악착같이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려 한다(p. 163). 권력욕이 강한 사람, 즉 권력이 우상이 된 사람은 이 신이 위협을 받을 때 견딜 수 없다(p. 160).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를 공격의 과녁으로 삼게 된다(p. 171).
이 의지는 집단적으로는 애국심으로 표출될 수 있다. 자국의 번영과 그것을 추구하는 권력을 우상화 하게 되면서 폭력과 불의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자신들의 힘과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결과 또 하나의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그는 C. S. Lewis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자녀를 향한 모성애나 조국을 향한 사랑도 경우에 따라 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자녀나 나라를 부당하게 대하게 된다.”
정치 이데올로기 역시 우상이 될 수 있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그를 지지하던 서구 사상가들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마르크스 주의에 따르면 악은 환경의 부산물이며 고로 환경을 통해 악을 고치고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너무도 얄팍하여 용인될 수 없다. …… 좌파가 늘 실망하고 또 실망하는 이유는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의 교리를 버렸기 때문이다”(p. 167).
사회주의가 붕괴되자 이번에는 자본주의가 구세주인 양 떠받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8-2009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 역시 실패한 신,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사고는 늘 유한한 가치나 대상을 궁극의 정답으로 승격화한다. 왜?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건 하나님을 몰아내면 그곳은 우상이 판을 치게 된다. 마치 한국 사회를 분석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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